고려말 1380년(우왕 9) 이성계(李成桂)가 지리산(智異山) 부근 황산에서 왜구의 대부대를 격퇴한 싸움. 고려말 왜구는 공민왕 때부터 창궐하였으나, 1376년 홍산(鴻山)에서 최영(崔瑩)에게 크게 패한 뒤 한동안 침략이 없다가, 1380년 8월 5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진포(鎭浦;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금강 어귀)로 침투해 3도지방을 대상으로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해 최무선(崔茂宣)은 화포(火砲)를 발명해, 그 화포로 진포에서 전투를 벌여 왜구를 크게 격파하고 함선을 모두 불태워 대승을 거두었다. 살아남은 왜구들이 더욱 심하게 노략질을 일삼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양광도(楊廣道)·전라도·경상도 3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로 삼아 왜구를 소탕하게 하였다. 양측은 운봉(雲峰)을 넘어 황산 서북의 정산봉(鼎山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이성계군이 10배나 많은 왜구를 물리쳤고 70여 명의 왜구만 지리산 방면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 뒤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1577년(선조 10) 이를 기념하는 황산대첩비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운봉읍(雲峰邑) 화수리(花水里)에 건립되었다가 파괴되어 1977년 다시 세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