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요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연곡사는 543년(백제 성왕 21년)에 화엄사 종주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경내에는
동부도,북부도를 비롯하여 국보 2점과 보물 4점이 보존되어 있다.








1981년 3월 1일부터 당시 주지인 장숭부 스님이 정부지원과 시주로 옛날 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강석과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새 법당을 신축한 이
후 복원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찰이름을 연곡사라고 한 것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
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한편 연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인데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
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방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
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담양출신 의병장 고광순. 그는 1907년 8월 26일 지리산 연
곡사에 근거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습을 받아 패전하고 순절
하였다. 이때 절도 불탔다. 이를 기리는 비석이 경내에 세워진 것이다.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경내에는
동부도,북부도를 비롯하여 국보 2점과 보물 4점이 보존되어 있다.
1981년 3월 1일부터 당시 주지인 장숭부 스님이 정부지원과 시주로 옛날 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강석과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새 법당을 신축한 이
후 복원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찰이름을 연곡사라고 한 것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
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한편 연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인데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
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방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
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담양출신 의병장 고광순. 그는 1907년 8월 26일 지리산 연
곡사에 근거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습을 받아 패전하고 순절
하였다. 이때 절도 불탔다. 이를 기리는 비석이 경내에 세워진 것이다.